할렐루야!
주님의 사랑을 심장에 품고 땅끝까지 이르러 사역하시는 PCK선교사님들의 사역의 현장에서 대를 이어 사역하고 있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 자녀들은 한국의 언더우드가족처럼 선교지에서 헌신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귀한 선교사들입니다. 이번 23-25년회기의
MK분과 에서는 이러한 선교사 자녀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교단의 선교 역사를 기록하고자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고, 많은 분들께 잘 홍보 되지 못하여 발굴되지 못한 사례들이 있을 줄 압니다. 이 작은 시작으로 대를 이어
사역하는 선교사 자녀들의 이야기가 계속 기록되어질 것을 믿습니다.
설문 응답자 중에는 한국에서 사역하거나 군에 있는 친구들, 유럽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아직 대학교이전 자녀들이 사역하고 있는
많은 사례들도 보내주셨습니다. 일단은 저희의 취지대로 현장에서 사역자로 수고하는 자녀이야기들을 올리기로 결정하였기에 귀한
응답자들의 글을 다 싣지 못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함께 수고해 주신 MK분과원들, 바쁘고 힘든 가운데서도 일일이 응답해 주신 부모선교사와 자녀들 그리고 적극 협력하고 도와주신
세선회 회장님과 임원들 무엇보다 세선회 홈피를 관리하고 계신 황관중 선교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설문에 응답해주신 MK와 부모 선교사>
■ 류** (류**, 배** 유라시아 지역)
■ 류** (류**, 배** 유라시아 지역)
-아기가 아파서 수술하느라고 한국에 가는 중이라 제대로 내용을 기록 못했다. 차후에 보완하기로 하다
■ 박** (박**식, 한**- 동남아시아 지역)
■ 장** (장**, 김**- 유라시아 지역)
■ 김** (김**, 장** 인도차이나 지역)
■ 배**선교사 (류**,류** 어머니-유라시아 지역)
23-25MK 분과위원들
황정숙(분과장-필리핀),김경민(회계-인니),정상진(고문-팔라우),박은주(말레시아),이세금(캄보디아),서재희(캄보디아),신하영(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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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류**, 배** 유라시아 지역)
<부모님에 대하여>
1. 부모님이 선교사님이어서 유익한 점은 무엇인가요?
키***** 비** 믿음교회선교는 단순히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실제 선교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며 배우는 것이야말로 그 진정한
가치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이론적인 지식을 넘어,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처한 상황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직접 느끼고, 그 분들의 사역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할 수 있는 분들 밑에서
배우는 것이 내게는 정말 큰 자랑이며,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2. 부모님이 선교사님이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점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대략 1994-2000년) 학교에서 현지 친구들과 가끔 가족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부모님의 직업이 선교사라고 말할 때 친구들은 처음 들어보는 직업이라 신기해하곤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선교사라는 이유로, 이슬람을 믿는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비난이나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한 후로는 부모님 직업을 묻는 질문에, 그들이 대학교에서 한국어과 교사라고 둘러대곤 했다. 실제로 부모님은 선교 초기 1-2년 동안 한국어과 교사로 일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아주 힘들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부모님이 자랑스럽다.
<나에 대하여>
1. 성함을 적어 주세요
류**
2. 하나님을 어떻게 영접 하였나요?
모태신앙으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녔고, 주변의 대부분이 크리스천인 환경에서 기독교라는 ‘종교’에 익숙하게 성장했다.
그러던 중 2006년 여름, 중국에서 유학 중이던 저는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교회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하나님을 깊이 체험했고, 그 순간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유학 생활 동안 외롭고 힘든 순간들이 많았기에 주님이 더욱 필요하고 간절한 시기인거 같았다. 하나님께서 나와의 만남을 얼마나 기다리셨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20여 년간은 단순히 종교인으로 살아왔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로는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다.
3. 현재 하고 있는 선교 사역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사역인지 서술해주세요.)
시작. 2017년부터 복음 전파와 구제 사역을 시작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달 한 차례씩 교회 성도들과 이웃 주민들을 위해 무료 이미용 서비스와 건강검진을 제공했지만, 2020년 팬데믹으로 모든 예배, 모임, 그리고 사역이 중단되었다.
팬데믹. 2020년 3월, 팬데믹 초기, 사전 예고도 없이 도시와 마을이 봉쇄되었다. 2개월 동안 격리되며 많은 시골 주민들은 식량 부족에 시달렸고,
심지어 굶어 죽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는 봉쇄가 완화되자마자, 우리는 100인분의 식료품을 구입하여 시골 주민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020년 6월, ‘카이로스’라는 비영리단체를 공식적으로 설립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4년 만에 120가정, 약 350여 명의 사람들을 케어하고 있다.
현재 다양한 구제 사역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1. *** BOX (식품 및 생필품 제공): 매달 케어 중인 가정에 식료품과 생필품, 옷과 신발을 지원하고 있다. 학기 초에는 학용품과 여자아이들(12-16세)을 위한 생리대도 추가로 제공하고 있다. 민족, 종교,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빵과 복음'을 나누며 몇몇 가정에서는 비공식적으로 가정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2. 일일 어린이 캠프: 봄방학과 여름방학에 1년에 두 번, 주일학교 학생들과 시골 아이들 60-70명을 초대하여 캠프를 열고 있다. 게임과 성경 말씀을 통해 기독교적 가치관을 나누며, 보호자들을 위한 내적 치유와 심리 상담, 그리고 생필품 나눔 행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특히 8월에는 새 학기를 맞아 아이들에게 필기도구를 선물로 제공한다.
3. 시설 방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고아원과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노인분들의 집을 청소해 드리고 있다.
4. 석탄 나눔: 2023-2024년 겨울 동안 50톤의 석탄을 나누어 80여 가정이 혜택을 받았다.
5. 묘종 나눔: 2023년 봄, 예상치 못한 눈으로 식물들이 얼어 죽자, 시골 주민들에게 묘종을 나누어 재배할 수 있도록 도왔다.
6. 건강검진: 6월 1일, 국제 어린이날을 맞아 가정 모임을 시작한 마을과 카라발따 장애인 시설에서 아이들을 위한 행사와 건강검진을 제공했다.
7. 교육센터 설립 계획: 시골 지역에서는 일부다처제, 보쌈(강제 결혼), 이혼, 알코올/마약 중독, 가정폭력, 성폭력, 동성애 등 다양한 종교적,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심어주고, 교육과 직업 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센터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4. 어떤 계기로 지금하고 있는 선교 사역을 하게 되었나요
2020년 팬데믹으로 도시 봉쇄가 이루어지기 직전의 어느 봄날, 운전 중에 오렌지색 점퍼를 입은 한 어머니가 찻길에서 구걸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신호 대기 중이던 그 순간, 그 모습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아픔과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조금 뒤 그 어머니는 힘에 부쳤는지
차도 옆으로 가서 앉았고, 그 옆에는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바라보며 천사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전에도 도로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날의 장면은 특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그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마음속 깊이 “나의 고아와 과부를 돌봐줘”라는 뚜렷한 음성이 들렸다. 그 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그날의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일을 계기로, 도시 봉쇄가 풀리자마자 6월에 공식적으로 NGO를 설립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복음을 전하고 구제 사역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팬데믹을 위기이자 종말처럼 여겼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고,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5. 부모님의 선교 사역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부모님의 선교 사역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헌신적인 모습과 그들의 사역을 지켜보며 자라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도 그 길을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신앙을 키우는 데 큰 모범이 되었고, 기독교 신앙이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가치임을 깨닫게 해주었다.부모님의 사역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선교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과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과
함께한 선교 현장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기독교 신앙의 깊이를 더해주었고, 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부모님이 보여준 사랑과 헌신은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나도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가지게 했다. 이런 모든 경험이 내 삶의 기반이 되었고, 앞으로의 사역에서도 부모님의 영향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자 한다.
6. 선교사 자녀로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경험은 무엇인가요?
최근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경험은 2006년 여름, 중국에서 유학 중일 때 다녔던 한인교회 청년부에서 키*****으로 선교를 갈 예정이었다. 청년부에서 선교 준비를 하던 중, 내가 키***** MK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준비 과정에서 키*****에 대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때, 내가 대답을 잘하자 청년부 담당 목사님께서 너무 잘 준비했다며 칭찬해 주신 적이 있다. 또한, 러시아어로 된 찬양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아무도 러시아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내가 발음을 교정해주고 알려주었다. 그러던 중 목사님께서 따로 나를 부르셔서 내 존재에 대해 물으셨고, 그때서야 내가
키*****MK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이후, 중국에 온 지 3개월밖에 안 된 나에게 모든 준비를 맡기셨고, 짧은 순간에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키*****에 도착한 후에는 통역과 번역을 맡아 도왔고, 이 경험은 아직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7. 부모의 사역을 이어받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선교 사역을 지켜보며 자라왔기에, 진로나 사역의 방향을 고민할 때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사역을 이어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역을 해나가면서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부모님의 사역을 이어받는 것보다는, 각자가 받은 소명을 따라 같은 선교지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동역자로서 사역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자리에서,
서로 힘을 합쳐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8. 부모님의 사역을 이어받는 것에 대해 가족과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부모님의 사역을 이어받는 것에 대해 가족과 친구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부모님은 오랜 시간 동안 헌신적으로 선교 활동을 해오셨기 때문에, 그들의 사역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의미 있는 선택으로 여겨졌다.
9. 선교지에서 겪은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선교지에서 겪은 가장 큰 도전은 문화적 차이와 언어 장벽이었다. 부모님의 선교 사역을 통해 자라났지만, 실제 선교지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중국에서 유학하면서 느꼈던 외로움과 힘든 상황들은 나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웠고,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있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또한, 선교지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MK라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과의 소통이 제한적이었고, 그로 인해 더욱 외롭고 힘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하며 사람들을 섬기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선교지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많은 도전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고, 신앙의 성장을 이끌어준 귀중한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도전들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앞으로의 사역에 대한 열망과 헌신을 더욱 강화해 주었다.
10. 선교사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정체성에 대해 MK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봤을 질문이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한국인도, 그렇다고 현지인도 아닌 어중간한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한국에서는 현지인처럼, 현지에서는 외국인처럼 여겨지니, 그 경계에 서 있는 것이 참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고민들이 한때의 일에 불과했음을 느낀다. MK의 진정한 정체성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작은 선교사'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우리의 존재가
참으로 귀하고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 미래에 선교 사역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나요?
신학을 공부하며 선교학에서 '현지인에게 사역을 이양해 자립을 돕는다'는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 내 관점은 '동역'이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기에, 선교사가 감당할 부분과 현지 사역자가 감당할 부분이 서로 다르다. 우리는 함께 일하며, 서로의 역할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중앙아시아의 키*****은 실크로드를 지나며 풍부한 역사를 지닌 곳이지만, 그 오랜 다문화·다종교의 역사는 이 지역을 영적으로 매우 혼탁하게 만들었다. 1000년이 넘는 이슬람의 지배와 70여 년간의 공산주의 영향은 가정을 철저히 파괴했다. 일부다처제로 무너진
가정, 상처받은 아이들, 그리고
점점 늘어가는 편부모 가정들이 많아지면서 사회는 아버지와 남성의 중요성을 잃어가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이
심각하게 퍼져가고 있다.
우리의 오랜 기도 제목과 목표는 바로 '가정 치유' 사역이다. 가정이 회복되어야 교회가 살아나고, 지역이 변화되며, 나아가 나라가 변화된다.
앞으로의 선교 계획은 크리스천 쉼터와 교육센터 설립이다. 가정폭력 피해자, 미혼모, 그리고 깨진 가정의 아이들이 날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기독교적 가치관을 심어주고 치유와 회복을 돕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쉼터와 교육센터를 통해 이들이 직업 교육과 함께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
이 모든 사역은 혼자 할 수 없기에, 동역자들과 함께 이루어 나가고 싶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걸어가는 그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라고
믿는다.
12. 선교지에서의 생활이 당신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선교지에서의 생활은 내 신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선교 사역을 지켜보며 자랐기 때문에, 선교지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랑을 경험하는 중요한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선교지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직접 체험하면서,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고유한 소명과 필요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게 되었다.또한, 선교지에서의 삶은 내 신앙을 더욱 깊고 실질적으로 만들어주었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개인적이고 진실해졌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신지를 경험하면서, 내 삶의 목적과 방향이 더욱 확고해졌다.
특히 유학 중 겪었던 외로움과 힘든 순간들은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었고, 그로 인해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졌다. 선교지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믿음의 근본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고, 앞으로의 삶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헌신하겠다는 결단을 하게 했다. 이러한 모든
경험이 내 신앙의 토대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겠다는 열망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13. 선교지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나는 9살 때 부모님을 따라 선교지로 나왔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생활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유년기부터 줄곧 키*****에서 지내왔고, 나의 인생 대부분을 선교지에서 보냈다.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가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외국에 온 것
같은 낯선 기분이 든다. 오히려 키*****이 내게는 진정한 집처럼 느껴진다. 선교지에서의 생활은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한국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나의 가족 (부모님, 동생과 그 가족, 그리고 저의 아내와 아이들)과 친구들, 섬기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들이 모두 이곳에 있기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행복하다.
14. 다른 선교사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 가족을 예로 들면, 부모님부터 우리, 그리고 우리 자녀들까지 세 세대가 선교지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비록 아이들은 아직 어리지만, 나중에
자라서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이것이 결코 우리 가족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부모님께서 수년, 수십 년간 눈물로
이루신 사역을 2세대, 3세대, 더 나아가 4세대까지 이어받아 확장해 나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다. 선교지의 지역과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스럽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선교사들의 하늘의 상급은 참으로 크다. 또한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신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안에 있다. 선교사 자녀로 태어난 것도 그분의 계획 중 하나이다. 그리고
MK(선교사 자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은혜가 있다. 나는 MK인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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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류**, 배** 유라시아 지역)
<부모님에 대하여>
1.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함은?
유** 배** 선교사
2. 부모님의 주 사역지는 어디인가요?
키***** 비**크
3. 부모님이 선교사님이어서 유익한 점은 무엇인가요?
1998년인가? 1999년인가? 내가 9살이었던 것 같다. 평소같이 토요일엔 아침부터 10분 거리에 있는 교회에서 놀고 있었다. 날씨도 참 좋았고 할 일
없이 교회 마당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데 교회 앞에 차 한 대가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를 내면서 멈췄다. 그 차에서 아줌마 두 분이 내렸는데 엄청
화나있던 게 멀리서도 느껴졌다.
«유목사 어딨어?»
«숨겨주지 말고 어딨는지 말해!»
«겁쟁이 같이 숨지 말고 나와!»
라며 죽일 기세로 교회 마당으로 들어왔다.
며칠 전 이 두 분의 어머니가 버스 사고로 크게 다치셔서 돌아가셨다. 교회에서 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기사가 할머니가 느릿느릿하게 타고 있는 걸 보지 못하고 출발한거다. 그 버스기사는 에디오피아 출신 남자였고 정치체제가 바뀌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
계속 키*****에 거주하는 사람이었다. 이방인인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 결국엔 그가 우리 교회에 와서 자기 좀 살려달라고 했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두 딸, 며느리와 자녀들은 다 우리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교회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 했겠나? 교회는 예수 믿다 죽은 사람은 천국에 갔으니, 또
하나의 절망한 영혼을 도와주기 위해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서 그 버스기사의 실수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두 딸의 편에 서지 않은 목사가
너무 얄미워서 아침부터 죽이겠다고 나타난거다.
교회 마당에는 나 말고 몇 명의 집사님들이 그들을 막아서면서 진정시키려고 노력했고, 나는 난리 속에서 그 자리를 제빠르게 벗어나 엄마 아빠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집까지 뛰어가면 5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었다. 뛰어가는 동안 숨은 턱턱 막히고 다리는 너무 아파서 멈추고 싶었지만 뒤에 그 아줌마들이 따라올 수 있기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달렸다.
'이 소식을 빨리 알려서 엄마 아빠가 빨리 도망가야 할텐데. 그래야 안 죽을텐데. 엄마 아빠 죽으면 난 어떡해? 나 그러면 누구랑 살아?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경우 날 받아줄 사람이 있을까? 무슨 돈으로 살지? 벌어놓은 돈은 없는데? 어쩌지?' 9살짜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급하게 인생계획을 세우는 순간 내 옆에 그 아줌마들이 타고 온 차가 슝 하고 지나갔다. 화가 나 있는 아줌마들의 표정, 차가 지나가면서 일으킨 흙먽지,
터지기 일보 직전의 내 심장소리,서서히 눈 앞을 흐리게 한 뜨거운 눈물,
이 모든 게 슬로우 모션으로 느리게 느껴졌다. '아… 끝났다… 난 이제 고아가 되겠구나..'
그 차는 우리 집 앞에 섰고, 아줌마들은 초인종을 눌렀다. 앞치마를 입은 엄마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문을 열어줬고 그 아줌마들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걸 보고 있는 난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울기만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줌마들이 집에서 나오기만을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난 그때 일분일초가 너무 공포스러웠고 깊은 상처가 되었다.
5년 후 난 개인것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내가 만난 하나님은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이고 나를 깊이 사랑하시는 분이란 걸 알게 하셨다. 그리고 내 삶에 일어나는 슬프고 아픈 경험들은 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그 아줌마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의 은혜로 그 분들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평화롭게 해결되었다. 그 버스기사는 예수님을 믿고
목사님이 되었고 지금은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고 10년 후, 난 그 아줌마들을 «마다먀» (고려인들이 «고모»를 부르는 방식)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고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막내 손자가 내 남편이 되었다. 내 머리 깊게 뿌리박고 있는 그 날의 사건은 결국 하나님의 멋진 반전스토리였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나에 대하여>
1. 성함을 적어 주세요
류**
2. 하나님을 어떻게 영접 하였나요?
사실 기억이 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자라다 보니 ...
3. 현재 하고 있는 선교 사역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사역인지 서술해주세요.)
교회사역,찬양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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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박**, 한**- 동남아시아 지역)
<부모님에 대하여>
1.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함은?
박**, 한** 선교사
2. 부모님의 주 사역지는 어디인가요?
필리핀 두마게티
3. 부모님이 선교사님이어서 유익한 점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넓은 세상을 경험한 것
4. 부모님이 선교사님이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정체성 및 언어
<나에 대하여>
1. 성함을 적어 주세요
박**
2. 하나님을 어떻게 영접 하였나요?
모태신앙, 중학교 때 인격적인 만남
3. 현재 하고 있는 선교 사역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사역인지 서술해주세요.)
12월에 부모님께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지로 나갈 예정
4. 어떤 계기로 지금하고 있는 선교 사역을 하게 되었나요
아버지 건강 악화로 하나님의 부르심 받음
5. 부모님의 선교 사역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어렸을 때부터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게 됨, 복음에 빚진 자로 살아가게 됨
6. 선교사 자녀로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경험은 무엇인가요?
선교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것
7. 부모의 사역을 이어받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함
8. 부모님의 사역을 이어받는 것에 대해 가족과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가족- 막내라 기대 안해서 더 놀라심, 친구- 그 길을 또 간다니 응원해줌
9. 선교지에서 겪은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가족 간에 갈등
10. 선교사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것
11. 미래에 선교 사역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나요?
사람을 말씀 안에서 바로 세우는 사역
12. 선교지에서의 생활이 당신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기에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됨
13. 선교지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떤 차이가 있나요?
풍요로운 한국에서의 삶은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기에 별 어려움이 없음, 없는게 더 많은 선교지에서는 하나님없이는 살 수 없음
14. 다른 선교사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선교는 헌신이 아닌 가장 큰 축복/ 나눌 때 더 큰 기쁨을 얻는 놀라운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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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장**, 김**- 유라시아 지역)
<부모님에 대하여>
1.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함은?
장**, 김** 선교사
2. 부모님의 주 사역지는 어디인가요?
중국, 러**(현재)
3. 부모님이 선교사님이어서 유익한 점은 무엇인가요?
외국에서 교육 받을 수 있다는 것, 선교사로서의 삶을 옆에서 지켜 볼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 가족과 관계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것, 외국인과 외국에 대해서 친근하게 느끼는 것, 하나님을 의지할 기회가 많은 것
4. 부모님이 선교사님이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머무를 곳이 적당하지 않은 것, 한국사회, 한국교회에 적응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
<나에 대하여>
1. 성함을 적어 주세요
장**
2. 하나님을 어떻게 영접 하였나요?
대학생 때 친구와 관계가 어려워서 낙심하던 중 제가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께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 드렸습니다.
어머니와 일대일 성경공부 등으로 말씀을 공부하던 중 예수님께서 저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정말 믿게 됨으로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3. 현재 하고 있는 선교 사역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사역인지 서술해주세요.)
현재는 러**의 블***** 국제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있습니다. 2021년 9월부터 일했는데 크리스챤 프로그램으로 러** 아이들에게 영어와 기타 과목을 가르치며 그 교과 내용을 근거로 하여 창조주 하나님, 구세주 예수님에 대한 소개와 말씀암송과 설명을 통한 교육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학교
사정으로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4. 어떤 계기로 지금하고 있는 선교 사역을 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졸업 할 때나 대학교에 다닐 때는 장래에 무엇을 할지 잘 몰랐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제가 다니던 연변 과기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곁의 교수님들의 영향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 더 알게 되었습니다. 과기대가 문을 닫은 후 러**의 학교에 오게 되어 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5. 부모님의 선교 사역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부모님의 선교 사역은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성도님들과 성경공부를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선교 사역보다 저의 학업과 삶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낀 것이 제 삶을 예수님께로 이끌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말씀을 많이 가르쳐 주셨는데 어렸을 때는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지만 말씀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많이 했었는데 성인이 되고 어려움을 겪고 마음이
겸손해지면서 말씀이 제 삶에 주는 영향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고 전하며 말씀을 사모하고 가르치는 일을 향해 갈 수 있었습니다.
6. 선교사 자녀로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경험은 무엇인가요?
제가 중고등학교 때부터 청년 때까지 여러가지 질병으로 아팠습니다. 부모님께서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7. 부모의 사역을 이어받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부모님이 선교사역을 떠나기 전 초등학교 4학년 즈음에 어린이전도협회에서 하는 겨울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선교사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선교사로 헌신할 사람을 초청하시는데 제가 울면서 나갔습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은 것 같은데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장래희망에 선교사라고 썼었는데 나중에는 그 꿈이 희미해졌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께서 저에게 그 얘기를 종종 해 주시며 저의 꿈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길로 들어오게 된 것 같습니다.
8. 부모님의 사역을 이어받는 것에 대해 가족과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부모님은 제가 선교사역을 하는 것을 지지해 주셨고 말씀과 기도로 격려해 주시고 후원해 주셨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외국에서 일하는 것을 멋있게 생각합니다.
9. 선교지에서 겪은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제 믿음이 희미해졌을 때입니다. 과기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는 일도 조금씩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실까 라는 의심이 들어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에 대해 너무 당연하게 믿어오던 것이라 많이 당황했고 부모님께 도움을 구하며 다시 어머니와
성경공부를 했고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던 중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믿음이 회복되었습니다.
10. 선교사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믿음의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지만 결국 신앙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제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않으면 믿음의 배경이 저와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선교사 자녀로서 얻은 유익과 은혜는 말로
할 수 없지만 결국은 제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1. 미래에 선교 사역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나요?
제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바로 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무슨 일을 하든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말씀을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전문영역인 영어를 더 다듬고 현지어를 잘 배우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붙여주시는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이해하며 섬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12. 선교지에서의 생활이 당신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제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바로 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무슨 일을 하든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말씀을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전문영역인 영어를 더 다듬고 현지어를 잘 배우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붙여주시는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이해하며 섬기는 한국에 오면 교회도 많고 기도원도 있어서 참 좋습니다. 하지만 선교지는 교회가 활성화되지 않아 있고 많은
경우 압박 가운데 있고 기도원은 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하려면 더 많은 헌신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선교지에서의 생활이 저로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소중히 여기고 절박하게 붙들게 하였습니다. 일을 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13. 선교지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한국은 볼 것도 살 것도 누릴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물가도 비싸구요. 선교지에서의 생활은 조용한 편인 것 같습니다.
14. 다른 선교사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이 한번뿐이라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저의 어린시절, 청소년시절, 청년시절도 한번뿐이네요. 선교지에 가면 외국인으로
살아야 하니 가족과의 관계가 가까워질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좋은 점도 있지만 상처도 더 받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혼내실 때 속상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는 것이 맞고 또 스스로에게도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해서 좀 어두운 청소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속상하고 뭐가 뭔지 모를 때도 부모님 사랑을 믿고 용기를 내서 부모님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스스로의 힘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다보니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부모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나서 받은 유익은 정말 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한번뿐인 삶을 선교사
자녀로, 선교지에서 살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또 다른 계획과 은혜가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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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김**, 장** 인도차이나 지역)
<부모님에 대하여>
1.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함은?
김** 장** 선교사
2. 부모님의 주 사역지는 어디인가요?
베**
3. 부모님이 선교사님이어서 유익한 점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위해 최전방에서 사역하시는 모습을 직접 경험하고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베**을 사랑하는 마음을 몸소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한 어릴 때부타 다양한 문화와 환경속에서 지내면서 여러 언어를 배우고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겨서 좋습니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부모님이 아시는 선교사님들이 계셔서 좋습니다.
4. 부모님이 선교사님이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잦은 만남과 떠남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점이 어렵습니다. 현지에 마땅한 학교가 없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했음이 어려웠습니다.
<나에 대하여>
1. 성함을 적어 주세요
김**
2. 하나님을 어떻게 영접 하였나요?
고등학교 때 집회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때까지는 부모님의 하나님이었지만 그날 이후로 저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3. 현재 하고 있는 선교 사역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사역인지 서술해주세요.)
아직 파송 2년차라 수습 선교사입니다. 부모님의 사역과 여러 선배님들의 사역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4. 어떤 계기로 지금하고 있는 선교 사역을 하게 되었나요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5. 부모님의 선교 사역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의 삶의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30여 년 전, 하나님께서는 부모님만 베**으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저도 함께 보내셨기에 삶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6. 선교사 자녀로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경험은 무엇인가요?
매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 베**에 가서 현지학교에 다녀야 했는데 언어가 되지 않아 6학년이었던 저는 2학년 남동생과 함께 베** 1학년
아이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를 했어야 했습니다. 3년 정도 지나서 현지 아이들처럼 언어를 구사하게 되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서 한국전쟁을 배울 때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배우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갖게 될뻔도 했습니다. 이일을 계기로 학교에 가기 싫어진 저는 무단 결석을
하다가 걸려서 결국 학교를 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와이로, 필리핀으로 자연스럽게 저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고, 그 이후 한국에서의 대학생활, 직장생활, 결혼, 그리고 사역자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모든 순간이 저에게는 기억에 남습니다.
7. 부모의 사역을 이어받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부모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베**을 사랑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습니다. 처음엔 단순 호기심이었지만, 저도 부모님처럼 모든 것을 뒤에
두고 하나님과 베**을 위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저 역시도 베**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고 불러주셨으며,
결국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8. 부모님의 사역을 이어받는 것에 대해 가족과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부모님이 가셨던 어려운 길을 가게 되는 것에 대한 대단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9. 선교지에서 겪은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MK로 사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M으로 사는 것보다는 쉬웠다는 것을 먼저 깨달았습니다. 오랜 시간 베**에서 살았고, 또 베** 언어를
알고 있기에 쉽게 적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동안 나 자신이 선교사 자녀로서 부모님의 우산 아래에서 편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몸소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0. 선교사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부모 선교사를 보내셨지만 동시에 자녀들도 어린이 선교사로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선교사 자녀 역시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11. 미래에 선교 사역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나요?
사회주의 국가인 베**의 특성 상 부모님께서 저에게 물려주실 교회나 선교센터와 같이 눈에 보이는 유산은 없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30여년
간 쌓아오신 선교적 바탕 위에 부모님 시대에는 하기 어려웠던 사역들을 추가로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 계속 고민하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12. 선교지에서의 생활이 당신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적 위치에서 보면 가진 것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마음을 어릴 때부터
선교지에 살면서 배웠고 또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13. 선교지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떤 차이가 있나요?
선교지에서나 한국에서나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하기에 특별히 다르지는 않습니다. 선교지에서는 언어와 환경이 조금 다른 정도만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14. 다른 선교사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씨름을 해야합니다. 부모님만 선교사이고 나는 이곳에 끌려왔다라는 생각은 버리고, 하나님께서 부모님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 나라에서 무엇을 원하실지 고민하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모든 선교사 자녀들이 부모님이 사역하시는 나라로
다시 가야할 필요는 없지만, 대를 이어 선교하는 것만큼 귀한 일도 없다는 것도 알면 좋겠습니다. 만약 제 아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베** 선교에 헌신하겠다고 하다면 저는 기꺼이 아들의 길을 응원하고 또 축복할 것입니다. 오래 전 한국에 오신 선교사님들이 대를 이어 헌신하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선교사 자녀들이 다시 선교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만약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그 부르심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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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교사 (류**,류** 어머니-유라시아 지역)
사역 동참, 양육, 결혼과 사역 부모의 입장에서의 자녀이야기.
1994년 무더웠던 8월에 카작스탄의 알마티를 경유하여 키****탄의 비**으로 오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쏟아지는 듯한 캄캄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의 환영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우리에게도 주시는 듯하였다. 9살 아들과 와 4살 딸의 손을 꼭잡고 우리 부부는 방향도 알 수
없는 새까만 어두운 길을 헤치며 몇 개의 가방을 싣고 거의 비포장과 비슷한 도로와 소련제 미니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며 긴 시간을 달려 주님이
기다리시는 비**에 드디어 도착했다. 올해로 30년 전의 일이다.아이들이 어리고 어디 맡길 곳도 없어 아이들의 예배 훈련은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밤이고 낮이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름이든 겨울 이든……모든 예배와 심방을 함께 다녔다. 그때부터의 예배의 훈련은 아이들이 장성하고 결혼해서도 이곳에서 함께 교회와 영혼들을 섬기는 은혜와 축복의 문이 열렸다고 나름대로 생각한다. 긴 세월이 지난 어느날 각각 중국과 한국에서 대학을 마칠 무렵, 앞으로의 진로를 위해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하면 좋겠냐고 물어왔다. 우리의 대답은 “그곳이 어디든 너희들이 살기에 행복한 장소에서, 그리고 행복한 일을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오빠와 동생은 말을 맞춘다. “우리가 배운 것을 행복하게 사용하고 나눌 곳은 우리가 자란 키*****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이들의 결혼을 위해 기도할 때 한 번도 외국인(현지인)일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어느 날은 친구 굴잣이 아들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선물도 주고 밥도 사줬다며 사귀어도 되냐고 물어본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 생겼다.
이때 하는 대답은 “기도해 보자”였다 한 달의 시간을 정하고 모두 기도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하다. 어떻게 아들에게 말할까? 어떤
이유를 말해야 되나? 안된다고…… 두 주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남편이 응답을 받았다고 하셨다.
내용은 “너희가 나를 위해 고향 친척 아비집과 모든 관계를 포기하고 이곳에 온 것처럼 나를 위해 아들도 포기할 수 있겠니? ”
“이곳에서 저 아이들을 통한 나의 계획이 있단다” 주님의 말씀에 우리는 생각할 여유도 없이 “ 예, 주님!”이었다.
그러고 나니 어느날 주님께 고백한 기도가 생각났다. 내적치유를 공부할 때 읽었던 책에서 ‘지금까지 모든 부모들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워줬지만 모든 아이들은 무엇인가가 부족했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조건 축복할 일이 있는데 자녀의 결혼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라면 아이들이 결혼하겠다고 데리고 오는 친구들을 무조건 환영하며
축복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결심했다.그렇게하기로……
그 자매는 한 교회에서 같이 신앙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대학도 마치고 직업도 있었고 부모는 선교지에서 귀한 기독교인이었고 형제 자매도 있었다. 그런데 현지 키*** 자매였다. 어떻게 하지………
이땅의 영혼을 사랑한다면서 눈물 흘리며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던 내가 아니 많은 부모들은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멈 짓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주님이 남편에게 응답하시기 전까지는 내속에서 싸움이 계속되었었다.
딸도 현지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실습을 한다고 이곳저곳에서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비전을 갖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아빠 엄마께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예상을 했다 분명히 남자친구 이야기일 거라고…아닌게 아니라 남자친구를 소개한다.
이 청년의 가족과 우리가족은 키*****에 와서 얼마 안되어 그의 할머니를 알게되었고 교회 개척 시절부터 함께 했으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로 시작해서 부모, 그리고 알렉과 그 자녀들까지 믿음의 4대를 이어오고있다.
딸이 4살, 알렉은 5살 때부터…… 온 가족이 함께 한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였기에 자라온 과정과 가정환경을 잘 알고 있었다.
반대할 아무 이유가 없었다. 특히 오빠가 키*** 자매와 결혼한 것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단다.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가정이라 특별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지만 남편은 뭔가 망설였다. “알렉이 안 되는 것이 아니고… 딸아! 니가 여기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라고 공부하고 컷기 때문에
시야가 좁을 수 있어 한번 한국에 나가서 공부를 더하면 생각이 다를 수도 있어 ……“
남편은 부지런히 한국에 있는 학교를 알아본다. 여기서는 영어교육과를 전공했으니 상담학을 더 공부하면 어떻겠니? 딸도 마지못해 좋다고 했다.
부지런히 서류 준비를 해서 보내고 몇 주 후에 서류면접이 합격! 두 주 후에 시험을 보러 갔다. 합격! 이렇게 학사편입을 하고 3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다. 이젠 잊으렸으나!……. 알렉은 딸이 떠난 후에 한두 달을 힘들게 지냈다.
“엄마 왜 나는 안되는거야?“. “아들아 기도하자” 일 마치고 집에 오면 울면서 모자간의 대화가 긴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딸도 조별 과제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기숙사에 돌아올 때면 “주님 이 버스를 타고 비**으로 하루만이라도 갔다오면 좋겠습니다. 너무 사람들이
보고 싶어요”하면서 울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딸도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가 있는 키*****으로 돌아왔다. 몇 달 후에 다시 딸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아빠! 알렉이랑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알았다. 기도 응답받고 와라.”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기도 응답을 받고 오라 했는데 알렉은 태평하고 딸만 애가 탄다. 알고 보니 알렉은 딸이 한국으로 떠나고 힘든시기에 “하나님 딸이 공부 끝나고 다시 이 땅으로 오고 (대부분의 선교사 자녀들이 공부한 곳에서 일하고 머물기 때문에) 또 그때 딸이 먼저 사귀자고 말을 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고 기도를 했고 그 즉시부터는 일어나 현실에 적응하며 맡은 찬양사역을 성실히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도한 대로 두 가지 응답을 받았던 것이다. 아들과 굴잣 딸과 알렉, 아이들 모두에게 기도 응답을 받고 오라고 했던 것은 청소년 때부터 기도로 찬양으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삶에 많은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 땅을 향한 계획과 두 가정을 향한 계획이 오래전 부터 있으셨다. 지금은 아들과 굴잣부부 가정에 두딸을 주셨고, 딸와 알렉부부 가정에 딸과 아들을 주셨으며 모두 신대원과정을 공부하는 중이다. 아들과 굴잣부부는 번역, 미디어, 의료사역과 NGO 구제사역으로 영혼을 만나며 섬기고 있으며 딸과 알렉부부는 번역, 교육, 찬양으로 사역에 동참하며 영광을 돌리고 있다.
아주 큰 하나님의 은혜이다. 정말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늘의 별들과 같은 자손의 약속이 우리 가정에서도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이 태초에 계획하신 대로 우리는“ 예! 와 아멘! ”으로 응답하며 나갈 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고난과 상황이라도 인내할 수 있고 아버지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데 동역자로 함께 나갈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