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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루터란교회 예배당을 빌려서 드린 미르선교회의 성탄절 연합예배 광경. |
"예수생명, 예수사랑을 말씀과 성령으로!"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사랑의 문안 드리며 감사함과 거룩한 부담을 느끼며 지난 14년 간의 주의 사역을 감당해 온 일의 흔적 일부를 나누고자 한다.
불곰으로 상징되는 러시아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위기와 변화 속에 주님께서는 복음의 문을 열어주셨다.
영락교회에서 보낸 청년시절 청년선교대회를 통해 이 한 맺힌 민족들에게 새하늘의 소망을 주시고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겠다는 비전을 발견하고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기로 헌신하기도 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시편 118 : 5)
반공포로셨던 아버지의 소천을 전후로 주의 부름에 응답하게 됐다. 실존적 고뇌와 방황 끝에 성령의 은혜를 통해 회심을 체험하고 나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은 나를 넓은 곳으로 계속 몰아가셨다. 대기업을 나와 장신대 신대원에 진학한 뒤 싱가폴 ACTI(타문화 선교 훈련원)와 맥코믹 신학대학원 등을 마친 뒤 94년 11월말 참으로 광활한 '러시아'로 파송을 받게 됐다.
상트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는 참으로 나에게 적절한 선교지였다. 동서양이 만나는 타 문화권 세계선교의 전략지이며 수많은 외국선교사, 귀한 한인선교사, 러시아 목사 등과의 만남을 통해, 연합과 협력 사역을 하며 디베랴교회를 개척하고 성령께서 일할 수 있는 토양이라는 확신 아래 미르(MIR)선교회와 신학교, 미르한인교회, 미르고려교회, 러시아 연합사역, 기도성회 사역 등을 전개해 나갔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금년 겨울은 비교적 따뜻하다. 한국인에게는 레닌그라드로서 익숙하게 알려져 있고, 공산혁명의 진원지요, 우리 민족의 한 맺힌 이산가족 및 남 북한 단절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성령님께 이끌려 파송 받은 지 14년이 흘렀다.
올해 1월 말, 이곳 넵스키 대로에서 독일 병정들과 러시아군인들이 레닌그라드가 9백일 간 포위되었던 일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2차 대전 당시 무려 1천5백만 명 굶주림과 질병, 폭격으로 죽었갔다고 한다. 당시 포위 상황 속에서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빵으로도 살아 남았던 러시아민족. 당시 전쟁 영웅들에게 메데베젭 대통령은 감사 편지를 보내고 마트비엔코 시장은 그들을 초대하였다. 우리 성도들인 효드로 파블로비치, 발렌티나 니콜라이브나등도 당시를 생생히 증언해 주는 인물들이다.
러시아는 세계적으로 넓은 국토 면적을 갖고 있다. 지구의 대략 1/6. 동서 간의 시차만도 무려 11시간에 달하고, 대륙 횡단 열차로는 대략 일주일이 소요된다. 다민족국가로 종교 또한 러시아 정교회 55%, 기독교는 1%로 추정되고 있다. 수도인 모스크바에는 9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그 절반 가량이 살고 있다.
공산 정권이 탄생했던 곳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현재 만여 명에 달하는 고려인의 애환이 서려 있으며, 문학가 푸시킨의 정서가 담겨있는 예술과 역사의 도시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대략 1천 년에 걸친 러시아의 정치적 문화적 연속성이 단절되면서 무신론적 소비에트연방 체제가 시작됐다. 1991년 12월, 연방이 해체되고 '독립국가연합(CIS)'이라는 새로운 정치ㆍ경제 블록을 형성케 되었다. 고르바쵸프, 옐친의 뒤를 이어 2000년 5월 블라지미르 푸친이 중앙 집권정책 및 슬라브 정통성과 더불어 실용주의 경제 정책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피터 대제를 흉내내었다.
푸틴은 여기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자신의 동지들을 곳곳에 세웠고 메드베젭 대통령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지만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자보다 술잔에 빠져 죽은 이가 더 많다'고 표현되는 러시아인들을 이해하는 것이 그야말로 '은혜'이다. 최근 구 소련시절부터 정교회를 이끌었던 알렉세이총주교가 사망한 뒤 진보적인 성향으로 주목받고 있는 키릴이 총주교로 선임됐다.
러시아 이희재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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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1992년 1차 대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CIS(구소련)한인 선교사대회는 러시아의 광대한 지역에서 모인 선교사들의 영성회복과 친교 협력사역을 공고히 하는 장이 되었다. 인간의 연약함까지도 사용하시는 주님 앞에 더욱 헌신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진은 지난 200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14차 CIS 한인선교사대회. |
러시아는 어려워도 명절은 어김없이 쉰다. 그들은 남성의 날(2.23), 여성의 날(3.8), 노동의 날(5.1), 승전 기념일(5.9)등 명절이 오면 한꺼번에 여러 날을 몰아서 쉰다. 주일성수가 몸에 배어있지 않은 교인들은 자유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미르밤'(MIR Bam), 러시아어로 '주의 평강!'을 전하며 인사를 나눈다. 부활하신 주께서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첫 말씀을 하신(요 20장) 이 장면이 미르 선교회 이름의 한 배경이기도 하다.
두 주전에 모스크바에 다녀 왔다. 중대한 회의(CIS 선교사회 상임위원회, 러시아 장로교 노회 구성위원회 등)를 앞두고 막막한 현실과 상황 앞에서 떠오르는 주의 말씀을 선포했다.
그간 1992년 1차 대회부터 2007년 14차 대회에 이르기까지 CIS(구소련)한인 선교사 대회는 그 광대한 각 지역(알마타, 타시켄트,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상트페테르부르그, 하바로프스크, 사할린,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 등)을 두루 돌며 매번 힘들게 1, 2년마다 열리다가 올해에는 15차 대회로 중앙아시아 카차흐스탄 알마타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현지 사정으로 대회가 연기되었던 이후 CIS선교사회는 문을 닫고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지역으로 분리하자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비상시를 대비해 2년전 힘겹게 상설화됐던 상임위원회를 가까스로 소집하게 되었다. 난상토론을 거치며 합심기도후 올해 10월경 '영성, 회복 ,창조'를 주제로 전략회의를 가질겸 함께 모이기로 하였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지난해 성탄절기에 오순절교단의 감독(미하일 바라노바)과 침례교단 감독(시콥 빅토르)을 미르선교회에서 초대해 다른 여러 선교사님들과 함께 교제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이 날 함께한 감독들은 오순절교단 54개 교회와 침례교단 42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귀한 지도자들로, 두 감독들은 각 교단의 수장이 함께 모여 식사하고 교제하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하면서 오랜기간 양 교단간의 껄끄러웠던 관계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미하일 감독은 우리 선교사들의 동역 요청에 자기 교단의 월례회(목회자모임)에 와보라고 했다. 이후 시간을 내어 월례회에 방문하니 한인선교사들과 깊은 연관이 있는 장 발로자, 이골목사, 송인태박사, 미하일 미르학장도 참석중이었다. 6월경에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본케 목사를 초청하는 것에 대해 논의 중이었는데 이를 보면서 지난해 고난주간과 아울러 진행했던 제5회 지도력개발회의(세계한인선교사회 주최)를 준비하던 때가 생각났다.
예기치 않게 이미 계약된 모자이크 수양관의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전해들었다. 정부당국에서 외국인들의 모임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검찰청 수양관인 이스트라에서 개회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주의 강권하심을 느끼며 러시아와 CIS선교의 원활한 네트워크 구성과 부흥, 회복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여러개로 흩어진 나라에서 사역하는 귀한 선인선교사들이 많이 모였다. 현지인 중심의 선교라는 주제로 발제, 응답 토의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만한 순서가 없다. 고석희목사(KWMC사무총장)의 'hapto(하나됨)', 'ishi(인간)' 등의 메시지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마침 주요 교단 선교부 총무 등 지도자들이 함께 참여함에 따라 거시적인 차원에서 러시아 장로교 총회를 설립키로 결의했고 준비위원 15인을 선출했다.
여전히 우리는 주의 기적을 간증할 때에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도 있음을 보지만, 그럼에도 주는 신실하시며 우리 마음을 연단하신다. 무한한 지혜의 주님은 그 깊은 원인과 얽힌 사연들 속에서도 주의 뜻을 이루어가신다. 사역의 드러나는 부분보다 소중한 것이 참된 영광을 돌리려는 마음과 과정인데…. 아무쪼록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오는 이 시대에 거룩한 주의 사랑으로 타오르며 말씀과 성령으로 함께 주앞에 드려지기를 기원한다.
러시아 이희재선교사
성령이 일하시는 공동체
[ 땅끝에서온편지 ] < 4 > 미르선교회 이야기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3월 26일(목)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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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지난 2005년 미르 선교센터 봉헌예배에 참석한 동역 선교사들과 내빈. |
3월초 동역하는 선교사들이 비전나눔 및 사역 전략회의를 위해 멀리 드베리 교회(기차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쪽으로 약 6시간 소요)로 갔다. 시기가 적절치 않은 것 같으나 주께서 강권하시는 것으로 여겨졌다. 함께 가는 기차 안에서 어느 선교사가 '너의 소중한 것을 버려라(depre-ssure off)'는 제목을 책을 읽고 영감을 주었다.
이따금 러시아 현지 목회자들과 미르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갈등을 겪을 때가 있다. 그들은 우리의 비전을 묻기도 하고 우리 사역의 목표를 제시해 달라고도 한다.
약 13년 전 미르선교회 창립후 처음 몇년동안은 그런 원초적인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새로운 선교사들이 허입되고, 부득이하게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선교사들도 있었고, 함께 동역하는 러시아 목회자들도 바뀌고, 우리 미르선교회 또한 가시적인 사역들이 생겨나자 자주 자주 문제에 부딪혔다. 무엇보다도 우리 여덟 가정의 서로 다른 교단 파송 선교사들의 핵심 가치 일치와 신뢰관계 형성이 늘 어려웠다. 선교지에서 함께 연합 협력하는 선교사역의 장점이자 한계이다.
드베리에서 사역하는 미르팀 홍 선교사는 사할린에서부터 사역하던 선임 선교사로 교회당 건축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 3층 규모의 커다란 교회를 후원교회 없이 몸소 지었다고 한다. 그 지역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물이다. 그 건물을 통째로 들어서 상트 페테르부르크 외곽으로 옮긴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선교사들의 탄성이 쏟아진다.
그는 미르 선교센터 수리시에도 한몫을 담당한 적이 있다. 우리는 홍 선교사의 교회에 여러 날 묵으면서 미르선교회 사역정신과 비전 선언문 문장을 작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우리는 주의 명령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의 정신으로 성령이 역사하는 선교 공동체를 추구하며, 이 땅의 부흥과 회복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간다…. 우리의 사명은 러시아 복음화를 위하여 현지인 지도력을 개발하고 협력하여 토착교회를 세우고 세계 선교에 동참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기도하고 토론하며 주의 은혜안에서 사역정신과 비전을 다시금 정했다.
7년여 전 미르 선교센터 구입을 위해 함께 마음을 모으며 서명하고자 문안을 작성하던 생각이 난다.
"……1996년 6월…, 러시아어로 '평안' '세계'라는 뜻을 지닌 미르(MIR)선교회가 교파를 초월한 한인 선교사들과 현지 목사들에 의하여 태동되었습니다. 외형적인 건물, 시설 등은 열악하나 주어진 여건 속에서도 성령께서 일하시는 토양, 살아있는 선교 공동체로 자라나는 꿈을 가지며 함께 심고, 물을 주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미르 선교회는 초교파적으로 신학교를 운영하여 러시아내지 단기 선교, 현지 교회 일꾼 양육과 평신도선교사 훈련ㆍ파송,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으며 신학교는 7회 졸업을 통해 53명이 배출되어 목사, 전도사, 교사로 현지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현재는 10회 졸업, 69명 졸업)……."
"2000년도에 새로운 발상의 전환으로 선교사들이 섬기던 유학생 예배를 통합하여 선교를 지향하는 미르 한인교회를 설립하였고, 미르 고려인교회가 특별한 문화 선교차원에서 공동사역으로 부흥되고 있습니다. 이제 함께 아픔과 사랑을 나누며…, 미르 선교센터를 세워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공감하였습니다."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수 3:7)"는 말씀을 기억하고 아래의 선교사들은 선교센터 건립을 위하여 2003년 5월 말까지 각각 3만 달러씩 담당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에 아래와 같이 서명합니다…."
그러나 미르 선교센터의 실제 구입과정시 건물주인 사야르의 독단과 예기치 않은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계약이 파기되어 암담한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마침내 주님의 역사하심으로 등기와 관련된 일을 마무리 했다.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선교센터를 바라보며 러시아인의 영성을 깨울 귀한 '주의 전'으로 사용되기를 기도했다.
지면을 빌어 여러 선교사님, 미르한인교회와 고려인교회, 현지인교회 교우들, 수많은 선교 동역자들(서울 안디옥, 화동교회 등)의 기도와 후원에 감사드린다. 아직도 디베랴교회, 안디옥교회, 예닮교회, 화평의교회, 사랑의교회 등 미르 선교회에 소속된 현지인 교회들은 주일에 가톨릭이나 루터란교회 등을 임대해 어렵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미르 선교센터는 좁아서 미르한인교회(주일 오전), 미르고려교회(주일 오후 등), 평일에는 신학교가 주로 사용한다. 이제는 디베랴교회 선교관과 신학교 기숙사를 겸하여 좀 떨어진 지역에 건물이 필요한 시기가 되어 기도중이다. 아무쪼록 미르 선교회가 성령이 일하시는 선교공동체가 되며 수많은 선교 동역자들과 교통하기를 기원한다.
러시아 이 희 재선교사
'주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니'
[ 땅끝에서온편지 ] < 5 > 베드로마을과 디베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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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02일(목)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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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5년 창립 10주년 및 추수감사절을 맞아 예배드리는 디베랴교회 교우들의 모습. |
러시아 수난과 부활절기에 문안을 전합니다.
언젠가 러시아 빠스하(부활절)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아침에는 진눈깨비가, 오후에는 함박눈이 쏟아졌었다. 오전에 유서 깊은 가톨릭 성당에서 디베랴교회 등 러시아 개신교회들이 각 층마다 마련된 장소에서 예수 부활을 축하하는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개신교 부활절이 러시아 정교회와 대체로 한주간 정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크리스토스 바스크레스(그리스도 부활)!'라고 인사를 하면 상대방은 '아직 고난 중'이라고 대답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어로 '베드로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레닌이 통치하던 시절의 감옥이었던 '뾰드르 파블로스카야(베드로 바울 요새)'도, 그 유명한 피터 대제도 베드로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
언젠가 네바강 동편에서 그물로 잡은 고기들을 끌어올리는 어부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어부들이 많은데 훗날 그들이 변화된 모습을 생각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느낄 수 있었다. 베드로가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은 디베랴 바닷가를 연상하며, 디베랴교회 베드로전도사가 잡은 모래무지와 비슷한 코류슈카라는 생선을 맛있게 구워먹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변화된 베드로를 통해 사도행전 교회가 열린 것처럼 러시아에도 주님의 역사가 재현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1995년 4월, 러시아 부활절에 디베랴교회는 우리 가정에서 개척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2~3주 후 경찰이 찾아오고, 수갑을 보여주며 세 가지 큰 죄(신고 없이 교회를 개척한 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 점, 목사 비자 없이 학생비자로 목회활동을 한 점)를 지어서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협박성 경고를 해왔다. 통역자를 비롯해 아무도 변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예전에 회심하기 전인 대학시절, 시위를 주동한 죄목으로 유치장에 갇힌 경험이 있었던지라 비교적 담담하게 이 일을 받아들였다. 허나 두려운 것은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였다. 러시아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선배들의 충고와 도움없이 교회를 시작하다가 바로 쫓겨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에 지나도록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8~10)
그후 한 두해를 지나며 디베랴교회는 부흥의 때를 맞기도 했다. 동역하는 선교사들이 세운 안디옥교회와 믿음교회와 더불어 미르선교회 및 미르한인교회, 미르고려교회 창립의 모판이 되었다. 하지만 긍휼교회를 개척하고 원치 않게 새날교회와 분립되기도 하는 등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겪으며 모진 시련의 시간들을 지나왔다.
이러한 가운데 수많은 주님의 사역자를 양육하기도 했다. 러시아 남쪽 크라스노다르스크 지역의 안드레이목사, 알렉세이전도사, 시카고의 저명한 마르크목사, 쿠바의 베드로목사, 긍휼교회의 로자전도사. 임마누엘교회의 최크림목사, 미르고려교회의 안토니나전도사 가정, 효드르와 안나집사 부부 등 귀한 사역자들이 거쳐갔고 다시 새로운 사역자들이 찾아왔다. 이런 일들을 통해 진정한 주님의 회복을 체험하게 되었고 부흥을 사모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 126)
한편 힘든 시기를 겪은 여성 교우들도 있다. 힐러리를 연상케하는 지성과 분위기를 지닌 마리나는 남편을 잃었고, 올가집사도 아들(바샤)을 잃고,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남편이 도망가버린 엘류사 엄마 , 딸을 낳은 후 남편은 행방불명되고 아들마저 마약 판매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스베타집사 등 교회 뿐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시련은 계속되었다.
"…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시 84:6).
그러던 어느날 왜이리 디베랴교회에 굴곡이 많은지 주님의 뜻을 구하며 예배를 드린 후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다른 동역자가 섬기는 교회가 차고 넘치도록 진실히 간구하고 복을 빌어라."
이 음성을 듣고 러시아의 부흥을 구한다면서도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부흥에만 집착하는 연약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로 다가왔다.
"적은 수가 모일지라도 감사하고 살아 있는 임재를 구하여라."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전 15:53~54)
인생에는 예측하지 못한 작은 일이 커다란 슬픔과 아픔을 초래하고, 때로는 예비된 사명의 은총으로 연결된다. 다시금 숱한 분들의 기도와 동역에 감사드리며 거룩한 사랑의 열정과 성령으로 타오르길 기원한다.
이희재
러시아 선교사
기도와 말씀, 내 믿음의 원동력
[ 땅끝에서온편지 ] < 6 > 하나님이 감추어 놓으신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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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09일(목)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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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밀레니엄을 앞두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기도성회 |
"주여! 이 땅을 치유하소서!"
지난주 국제 기독학교 채플실에서 봄 연주회가 있었다. 자녀들의 연주를 대견하게 보는 부모들과 그들의 자녀를 바라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지금은 한인 자녀가 거의 25%나 되는 이 학교도 자체 건물이 없어 자주 이사를 다니고 있는데 이번 가을에도 또 옮겨야 할 처지이다.
90년대 초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이 물밀듯 들어올 때에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ICS)와 러시안 크리스찬 학교 (RCS)가 한 우산 아래에 설립됐다. 이 학교들은 별다른 후원없이 단지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느날 마이클 케네디교장에게 왜 한인 이사는 없느냐고 농담처럼 말한 것이 발단이 되어 한인 학부형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사로 섬기게 되었다. 몇 년 후 건물 임대와 관련해 마피아의 개입으로 소송에 휘말려 학교 건물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책임자인 가트몰러 미국 선교사는 러시아 정황에 초연하고 담대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학교가 처한 상황이 텔레비전에 보도되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트비엔코 시장 등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으며 새로운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됐다.
비록 지금은 가트몰러가 운영하는 러시아 기독학교와 국제 기독학교가 수년 전부터 서로 나뉘어진 상태이고, 각자가 어렵게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비록 미르신학교의 상황과 비교하면 국제 기독학교의 형편이 부러울 따름이지만. 미르선교회가 문화재단 명의를 빌려주는 등 법적으로 국제 기독학교를 보호해주고 있는 상황이 러시아의 특수한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미르신학교는 이번 가을 학기부터 예비 학부와 목회연구과정을 개설해 주님의 사역이 러시아 땅에서 더욱 확장되어 가길 기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신학교 이사회(이사장:김찬종목사)가 구성되기도 했다.
90년대 초에 러시아에 왔던 외국 선교사들은 이 땅의 부흥을 위해 1년에 한차례씩 특별기도회(Prayer Summit)를 가졌다. 한인 선교사들도 매월 1회씩 여러 곳을 순회하며 기도회를 가졌는데, 특히 2000년을 앞두고 몇몇 단체들이 연합해 3일간 가졌던 기도회를 잊을 수 없다. 연합 기도회가 열리기 전 러시아 기독교 교역자협의회 모임에서 에스겔의 마른 뼈 말씀을 러시아어로 선포했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반목사가 은혜를 받은 일이 계기가 되어 기도회로 이어졌던 것이다.
지난주에는 현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러시아 장로교 준비를 위한 첫 공청회가 모스크바 장로회신학대학에서 열렸다. 그때 필자는 러시아 장로교 연합의 비전에 대해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관련된 외국 선교사들의 예를 들어 언급했다. "하나님은 문화의 장벽 너머에 숱한 자원을 감추어 놓으셨다"고.
많은 분들이 추위 언어 마피아 문화의 장벽 재정적 어려움 등을 예로 들며 러시아 선교에서 무엇이 가장 어려운 지 묻는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29년 전 회심한 이후 '내 믿음의 원동력'에 대해 자문하게 되는데 그에 대한 답은 동일하다. 바로 '기도와 말씀'이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여러 고비와 굴곡이 있겠지만 회복과 부흥, 새창조의 소망이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건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일 것이다.
선교현장에서는 말씀이 더욱 깊이 다가오는 듯하다. 수 년전 들었던 감동적인 말씀들이 사역 현장에서 다시 생각나 이를 통해 몸과 마음을 연단시키는 시간을 갖게 되기도 하고 사역지에서의 수많은 만남들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기도 한다.
40여 개국을 다니며 영성 수련회를 인도하시는 어느 목사님은 러시아에 대해 "환경은 좋으나 복음을 전하기에는 영적으로 어려운 지역"이라고도 하셨다. 얼마 전 모스크바의 코스타(유학생집회) 강사들과 기독교 TV의 프로듀서가 잠시 이곳을 방문했는데, 강사들 중 한 분이 새벽기도 중에 하신 말씀이 큰 은혜로 다가오기도 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시 40:1~2) 또 필자의 집에서 묵게 된 어떤 분과의 교제를 통해 러시아를 향해 비치고 있는 복음의 빛을 보게 된 경우도 있다. "세상에서 구별되는 영원한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터득하지 않았지만 한가지 위대한 것을 터득한 사람이다."(존 파이퍼의 '삶을 낭비하지 말라'중에서)
아무쪼록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과 선교 동역자들이 말씀안에서 자유하며 성령으로 교통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생존과 변화의 기로에서
[ 땅끝에서온편지 ] < 7 > 러시아인, 이 시대의 유목민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4월 16일(목)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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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경제적 변화를 겪고 있는 러시아 정세와 마찬가지로 선교현장에서도 복음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12차 CIS 한인선교사대회. |
러시아는 사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교차로이다. 레너드 스윗목사의 "동양과 서양의 균형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바라보라는 통의 시대…"가 인상적이다.
연해주에서 2012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ㆍAsia Pacific Economic Council) 정상회의 준비가 있을 예정이고, 북한의 나진과 러시아 핫산을 잇는 철도노선 소식도 들려온다.
16년 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사역지를 옮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싱가포르 타문화권 선교훈련원(ACTI) 과정을 마치고 중국 선교사의 비전을 품으며 관련 절차를 밟고 있었다. 미국 시카고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염두에 두고서 말이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하던 중 결국 시카고를 거쳐 멀리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보내심을 받았다. 그러기에 연해주와 중국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들에게는 특별한 애정과 존경이 간다. 연해주 지역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회가 세워져 복음의 뿌리를 내렸고 연합사역을 본이 되고 있는 곳이다.
지난 1996년 1월 말, 러시아 선교 초창기에 가깝게 지내는 선교사와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6박7일간 횡단하는 대륙횡단 열차를 탄 적이 있다. 러시아 선교사로서 대륙을 품으려면 한번쯤은 타봐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때 시베리아, 하바로브스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선교사들과는 지금까지도 믿음과 우정을 나누며 러시아 선교사들 연합 모임을 구성해 든든한 믿음의 동역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CIS(구소련) 한인 선교사들이 각 지역에서 번갈아가며 서로를 초대해 각자의 고민과 사역 상황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러시아 여러 지역을 탐방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특히 사할린은 한민족의 서러움이 담긴, 러시아 선교의 못자리요 역사적인 선교현장이다. 대한항공 추락 사건과 함께 수많은 아픔과 눈물로 얼룩진 땅이다. 그 열악한 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 자립해가고 있는 주의 종들의 모습도 보았다. 한편 사할린은 연어와 꽃게는 물론 원유,석탄, 나무 등 자원이 풍부한 보물섬이기도 하다. 마치 흑암 중의 보화처럼.
한편 상트 페테르부르크 라브리수도원 옆 묘원에는 푸시킨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학,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기도 하다.
우리집 아파트 11층 창문 너머 아스팔트 거리에 '나타샤, 야 찌뱌 실로 류불류!!'(나타샤!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라는 글귀가 크게 써 있던 적이 있다. 처량하나 대담한 러시아 젊은이의 사랑하는 이에 대한 절절한 마음과 함께 낭만이 느껴진다. 꽃을 사랑하는 나라, 강아지와 가로수 길을 거닐며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비록 굶주림과 배고픔의 고통도 있지만 예술과 낭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러시아인들이다.
이와 관련 몇년 전 열린 어느 세미나에서 정교회 소속 베냐민 신부는 "러시아인은 유목민 기질이 있다. 한곳이 더러워져도 땅이 너무 넓어서 그냥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모성사회의 영향력,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예술에는 탁월하다"는 내용의 발제를 하기도 했다.
최근 러시아 작가 고골(Nikolai Vasil evich Gogol)의 탄생 2백주년을 맞이해 보도된 신문 기사에서 고골이 어느 나라 사람 이냐는 논쟁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간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고 글은 러시아에서 썼고, 죽을 때는 모스크바에서 죽었다." 저마다 생각하는 정신적인 영웅이 자신의 나라의 정서를 지니고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얼마전부터 이곳에는 시장경제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즉 러시아의 정신 및 영혼의 흐름과 시장경제나 민주주의가 잘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동안도 소위 반정부 지도자들이나 언론, 방송, 각계 지식인 중에 슬그머니 사라지거나 처형 당한 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한다.
러시아의 가장 근본적인 관심은 어떻게 살아 남느냐이다. 1백년 동안 정치, 경제의 울타리가 두차례나 붕괴되는 경험을 가졌기에 생존에 대한 이들의 경각심과 몸부림은 처절하다. 1917년 공산주의로 제정 러시아가 막을 내렸고, 1991년 구소련이 무너졌고, 지금은 변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러시아 선교도 신학교육이나 교회도 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혹한의 땅에서, 영적 목마름에 허덕이는 이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러시아 곳곳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헌신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하나의 러시아 장로교를 세워가는 운동과 러시아 목회자들간의 초교파 복음주의 연합모임들이 왕성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바라건데 러시아 안에서의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 복음의 지평이 확대되어가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이희재
러시아 선교사
우리의 이웃 '러시아'
[ 땅끝에서온편지 ] < 8 > 복음의 열매를 거두리니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4월 23일(목)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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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지난 2004년에 열린 미르 한인교회 수련회 모습. |
러시아인들을 알려면 그들이 살고 있는 집과 자동차 공장, 재래시장을 가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인들도 대부분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기에 주님의 종들간에도 차분히 삶을 나눌 기회를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곳에서 만나는 한인 선교사들은 '어떻게 하면 러시아 목회자와 현지 지도자들간의 바람직한 파트너 십을 형성하고 사역할까'를 고민하며 다양한 만남들을 시도한다. 이에 대해 게오르기 목사(미르신학교 교무처장)는 선교사들이 스스로의 삶을 투명하게 내놓고 살아야 다른 이들도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고 조언한다.
17년간 러시아 교역자협의회인 '사투르니체스트보'를 이끌고 있는 빨랴콥 드미트리 목사는 "러시아 정교회는 우리 한인 선교사들처럼 전도에 전념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개신교회 전도 사역이 그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칠 수밖에 없고 이는 러시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러시아인들과 이웃이 됨으로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말을 들으니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도 무관심하다는 러시아인들의 특성과 이들을 전도하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겪었을 드미트리 목사의 경험이 느껴진다.
여느 시작이 그러하듯이 미르한인교회 또한 주님의 오묘하신 섭리안에서 공동체가 시작되고 이어져오고 있다.
지난 2000년경으로 기억되는데, 갑작스레 사역을 철수하게 된 어느 선교사가 함께 예배드리던 교인들이 필자가 시무하는 디베랴교회를 섬기도록 했으면 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그 교회와 디베랴교회의 한인 교인들이 함께 모여 연합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두달 후 또 다른 선교사도 부득이하게 한국으로 떠나야 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러한 일들로 인해 더많은 숫자의 한인 교인들이 모이게 되면서 예배당이 비좁게되자 예배 처소를 물색하던 중 적합한 장소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인 예배를 담당하는 외국 선교사 존과 사라가 많이 불편해했다. 우리는 오후 2시에 2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그들은 다른 시간에 3층에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서로 간에 부딪힐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되자 다시 다른 곳으로 예배 처소를 옮기기로 했는데 놀랍게도 존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예배시간을 오전으로 옮긴다면 음향시설 등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미르한인교회가 시작되었고 이는 미르선교회 선교사들이 더욱 친밀한 협력관계를 세우고, 훗날 미르 고려교회의 창립 비전도 나눌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2001년, 미르선교회는 로렌 커닝햄(YWAM 설립자)을 초청해 세계선교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기회를 가
졌다. 이를 통해 미르한인교회는 선교를 지향하는 교회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한인선교사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이 곳 현실에 수없이 직면한다. 물론 선교사들 내부의 관계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알렌, 언더우드, 헤론 등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도 선교에 대한 관점과 개인적인 성격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던 것처럼 현지인 사역자들과의 소통의 어려움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 때문에 고민하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 미르선교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총이며, 여기에 더해 많은 동역자와 후원자들의 기도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고백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시 42:5,11)
지난 2002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에서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에이비슨 선교사의 손녀딸이 전했던 짧은 메시지가 잊혀지지 않는다. "나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의 할아버지는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했습니다. 만 여 명의 한인 선교사 여러분은 우리 할아버지가 심은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러시아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세우신 주님의 뜻을 되새기며,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는 그 날을 꿈꾸며 이 곳에서의 사역들이 주님 앞에 영광된 모습으로 열매 맺기를 소망한다.
이희재
러시아 선교사
'영원한 불꽃같은 주님의 은혜'
[ 땅끝에서온편지 ] <9> 이 땅을 향한 비전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4월 30일(목)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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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지난해 12월 열렸던 선교사 자녀학교 연주회 모습. |
하와이 코나의 예수전도단(YWAM) 열방 대학 선교팀이 러시아를 방문했다. 3개월 간의 예수제자훈련과정(DTS)을 마치고 아웃리치 프로그램으로 모스크바, 볼고그라드, 우크라이나 키에프를 거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왔다. 특히 필자는 예수전도단 캠프를 통해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바 있기 때문에 이들의 방문이 참 반갑게 느껴졌다. 그동안 이 곳에서 사역을 하면서 다양한 선교팀을 만났으나 예수전도단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설레인다.
이번에 공항에 마중을 나가니 7년째 코나에서 섬기고 있다는 팀장과 한 명의 여자 리더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1.5세가 아닌 미국 청년들이었다. 예상 밖이어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으나 한인 청년들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다행인 면도 있었다. 러시아는 4월에 히틀러의 생일이 다가오면 동양인 등의 유색인종을 상대로 한 스킨헤드족의 공격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로렌 커닝햄의 헌신으로 시작된 세계적인 선교단체의 활동과 이를 통해 이루신 주의 섭리를 묵상하는데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그리고 "사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놀라운 마음의 성소가 있다…. 그러나 그 빛은 희미해지고…, 단조로움이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내주하시는 주의 빛은 영원한 불꽃으로 계속해서 타오른다"는 토마스 켈리의 고백도 마음을 적셔주었다.
사도 바울의 선교 여정과 서신이 훗날 성경에 기록되었듯이 우리 선교사들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때 그 깊고 넓은 섭리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할때가 많다. 별다른 변화가 없어보이는 사역에 답답함을 느낄때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일어나는 놀라운 부흥을 사모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선교현장이 아닌 한국의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선교지를 후원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선교사는 일상의 작은 만남과 대화 속에서 많은 감동을 받는다. 4년여 전 큰 아들 종은이와 선교사 자녀 학교의 머린다, 제리드, 시거 선생님이 헝가리에서 있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 어느덧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고 떳떳하게 대화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심 대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또한 종은이의 친구인 사할린 선교사의 자녀 호걸이가 상트 페테르부르그 국립대학의 강의를 소화하며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분의 자녀들을 친히 길러주시는 주님의 손길에 큰 감사를 느끼기도 했다. 호걸이는 미르 고려교회 청년리더로서 활동하며 교회의 든든한 일꾼으로 성장해나가고 있다.
수년전에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천 엘레나, 김 레나 전도사 등이 삶의 새로운 전환을 꿈꾸며 이주해왔다. 그들을 주님의 일꾼으로 양육시킨 동역 선교사님들의 노고를 보면서 또 한번 은혜를 체험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선교사들의 가정을 위해 대표기도를 하게 되어서, 이 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 드리는데 내 마음에 진한 성령의 감동이 왔다.
어떤 선교사는 건물 완공을 앞두고 있다가 화재로 다 타버리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일꾼이 죽었다. 어떤 분은 가족이 심한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또 다른 분은 파송 교회나 후원 교회와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멀어지는 등 동역하는 선교사들이 겪고 있는 많은 상처들과 고통이 마음에 그대로 전해져왔다. 이렇게 기도를 통해 한 분 한 분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진실로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며…,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사 58:8~12)
이는 실로 러시아와 구소련 땅을 향한 주의 약속과 비전을 일으키는 말씀이다.
이희재
러시아 선교사
'새 하늘을 바라보며'
[ 땅끝에서온편지 ] <10> 우리를 향한 하나님 말씀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5월 08일(금)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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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필자와 동역중인 미르선교회 선교사들. |
"주께서 지으신 세계는 실로 광대하다. 그 지으신 인간의 영혼은 더욱 위대하다. 현대 문명 속에 있는 이들은 원시적인 문화(non verbal culture)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모든 사람들은 주 앞에서 동일하다. 어느 누구나 죄인이고 사랑과 인정 받고 싶은 목마름이 있다. 동시에 모든 이들은 각기 자기 길을 걸어간다.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은 얼마나 놀랍고 위대할까!"
"러시아에 온 지 한 달쯤 지나니 그 감동이 식어가고 있어 기도를 다시 합니다. 톨스토이가 그러했듯이 지금 이 자리에서 만난 미르신학교 여러분들이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분들입니다…." 지난 주간에 러시아인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어느 선교팀 여자 리더의 간증이다. 그 여자 리더의 고백을 들으며 마펫 선교사가 1백여 년전 자기 집에서 두 명으로 시작한 장신대가 지금처럼 성장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미르신학교와 선교회도 지금은 미약하지만 훗날 이러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될 것을 기도하며 장차 그 날을 기다려본다.
며칠전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상트 페테르부르크 장로교의 첫 노회와 목사 안수식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10여 년전 장로교 공의회에서 안수를 받고 바로 미국으로 떠났던 마르크목사가 생각났다. 미국 전역의 러시아 출신 복음 성가 가수들을 이끌고 지금까지 지켜주신 주님과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해 이곳 네바강가 인근에서 특별 공연을 가졌다. 공연내내 주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에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었다. 어려운 시간들을 잘 극복하고 주님의 일꾼으로 사역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믿는 이 한사람 한사람과 연결된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밤이 되었다.
지난 주일에는 뾰드르전도사가 시골 농장에 집을 지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결국 디베랴교회에 작별을 고했다. 동역하는 다른 사역자와의 갈등이 발단이 된 듯 한데 이 일로 인해 교인들과 동역하는 이들도 심란해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게오르기목사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 대부분이 러시아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러시아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어느 기업이 푸틴에게 프로젝트를 제출했다가 거절됐는데 그 기업이 메드메데브에게 직접 찾아가 허락을 받았다고 치자. 자연히 둘 사이의 우정과 신뢰에 흠이 가지않겠느냐는 것이다. 즉 나라든지 단체든지 개인이든지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복잡하고 미묘한 갈등과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이 시대의 종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저 살아계신 주를 진심으로 찬양하고 때마다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복잡한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에서 사역을 하면서 스스로에게나 가족들, 동역자들에게 '인생이 무엇일까'에 대해 묻거나, 사역의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역시 삶의 전과정을 보고 계시며 날마다 주와 더불어 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토록 경쟁하며 살던 누군가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축복하길 원하시고, 미워하고 갈등을 겪는 친구에 대해서도 용서하고 화해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진정한 새 하늘이 열릴 것이라 하신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해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욥 42:5~10)
25여 년의 믿음과 우정을 지속하고 있는 새하늘 선교회의 형제, 자매는 물론 러시아에서 10여 년 이상 동역하고 있는 미르선교회의 동역자들과 현지인 사역자들, 또 러시아와 구소련을 포함해 세계 전역에 흩어져 헌신하고 있는 한인 선교사들과 사랑과 감사를 나누길 소망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이희재
러시아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