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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투사가 하나님 나라의 선동자로!" - 이희재회장님의 투데이N 인터뷰 기사

최고관리자 0 366 2020.12.14 21:47

민주화 투사가 하나님 나라의 선동자로!

서울대학교 2학년 시절, 학생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학교에서 제명, 강제 징집, 선교단체 수련회 에서 예수님 만나 
이희재 선교사 “사도바울이 투박하게 쓴 편지들이 성경이 된 것처럼, 우리 삶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6년간 디베랴교회, 미르한인교회, 미르고려교회, 미르신학교 설립 등 열정적인 사역 이뤄

정의감에 불타던 청년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러시아 복음화의 사명을 받아 1994년부터 26년간 러시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왔다.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선동자로 사역하고 있는 러시아 이희재 선교사를 만나본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역하는 이희재 선교사

I 삶의 시선 

Q. 하나님의 첫사랑을 경험한 순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소식을 들었다. 함께했던 운동권 친구들은 만세를 불렀지만 나는 또 다른 죽음 앞에 침묵하게 되었다. 곧바로 아버님이 사고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것이다. 그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심각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었다. 하지만 한동안 나의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었다. 내 삶의 목표와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던 1980년 5월 14일, 영등포역 앞에서 데모를 주도하는 일이 일어나게 되고 도망 다니던 어느 날, 오래전부터 나를 전도하던 친구 김정환이 나에게 예수전도단(한국 YWAM) 5박 6일의 전도요원 훈련에 가도록 권유했다. 참가비를 대신 내어주어 나는 참여하게 되었다. 

며칠 동안 말씀과 강의, 저녁 특별집회가 진행됐다. 창조와 구원, 성령에 대한 강의를 여러 강사를 통해 들었다. 마지막 날 밤, 어느 인도자가 강력히 인도했다. 그러나 내겐 그 모습이 선동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고 어색해 보였다. 나는 그 강사보다 선동을 더 잘할 것 같았다. 그들의 율동은 아름다웠으나 민족이 어려운 이 시기에 무슨 찬양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들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관망하면서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갑자기 주님의 빛이 비쳤다. 그들이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나보다 저분들이 더 정직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성령이 교만하고 완악한 나를 책망하자 내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게 되었고 회개하게 되었다. 이어서 다른 인도자가 앞으로 나오라 하였을 때 나에게 뜨거운 불이 내렸다. 고린도전서 12장 첫 번째에 나오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구했다. 그런데 지혜를 받았는지 확실히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혹 버림받지나 않았나 하는 무서운 생각도 스쳐 갔다. 그리곤 두 번째 초청이 이어졌다. 그때는 겸손히 아무 은사라도 주시도록 구했다. ‘방언도 좋고요’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즉시 알지도 못하는 방언이 막 튀어나왔다. 할렐루야! 마음 깊은 곳에서 생수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날 하늘이 얼마나 맑아 보이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새벽마다 가까운 교회나 집 근처 야산에서 새벽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 어렵던 성경이 귀한 달고 오묘한 말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의 변화는?

어릴 적 나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리고 학창 시절 반장이나 대표 역할도 많이 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해에 1학년 교양과정부의 대의원회 의장을 하면서, 장래에 국회의원 등을 거쳐 야당의 대권후보가 되고 싶은 꿈이 커졌다.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 싶은 낭만적인 야망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당시에 추구하고 닮고 싶었던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이 사라졌다. 존경의 대상이 달라진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삶의 방향이 바뀌어서 주님을 전하며 주의 종으로 살고 싶어졌다.

미르수양관에서 열린 미르고려교회 수련회에서 성도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Q. 당신의 삶을 공유하는 홈그라운드는?

나의 홈그라운드는 미르선교회이다. 나의 삶과 사역을 이야기할 때 미르선교회는 빼놓을 수 없다. ‘미르(МИР)란 영어 Mission Jesus in Russia의 러시아어 약자이고 평화라는 뜻이 있다. 1995년 5월에 함께 사역하던 한인 선교사들과 함께 설립한 초교파 선교단체이다.

매일 새벽에 미르선교센터에서 기도하고, 미르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선교회를 중심으로 한인 선교사를 비롯한 현지 목회자들과의 사역도 이뤄진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미르신학교를 통해 1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들은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 목회자와 교사로 사역하고 있고, 러시아 개신교의 확장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10월에 열린 영락교회 선교부흥회에서 이희재 선교사 부부가 협동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Q. 최근 삶에 변화를 이끄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가운데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러시아는 1일 확진자가 25,000명을 넘었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 잠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모교회인 영락교회에서 열린 선교부흥회에서 우리 부부가 영락교회 협동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 파송식을 통해 내 마음속에 이 시대를 향한 사명감도 새롭게 불타오르게 됐다. 26년이 넘는 러시아 선교 사역에서 하나님께서 숱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의지할 때 새로운 소망을 주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이번 국내에서의 시간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 나라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사명감으로 충전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국내에 체류하면서 거의 매주일 개척교회 등에서 말씀을 전하고, 영상으로도 설교를 보내고 TV 방송국 출연과 온라인 선교세미나 발제 등 쉼 없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돼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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